'지뢰밭' 빠진 대선판…이재명·윤석열 '뒷덜미' 붙잡나 [홍영식의 정치판]

입력 2021-10-10 09:33   수정 2021-10-10 09:38


역대 대선에서 대선판을 뒤흔든 굵직한 사건들이 적지 않았다. 그 사건이 아니었으면 선거 결과가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도 있었다. 특히 2002년 대선 5개월을 앞두고 김대업 씨가 이회창 후보의 부인이 돈을 주고 아들 병역 면제를 받았다고 주장한 이른바 ‘병풍(兵風)’ 의혹은 대선판에 직격탄이 됐다.

검찰은 수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수사가 지지부진하는 바람에 이 의혹의 진실이 드러나기 전에 대선이 치러졌고 이 후보는 노무현 후보에게 2.3%포인트 차이로 패배했다. 검찰은 대선이 끝난 다음인 2003년 1월 김 씨를 무고 혐의로 구속했고 대법원은 이듬해 김 씨에게 징역 1년 10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이 후보로선 버스가 지나간 다음이었다. 대법원은 김 씨 관련 손해 배상 판결에서 “(병역 비리) 보도가 대선에서 이 후보에 불리하게 작용했음이 명백했다”고 밝혔다.

앞서 1997년 대선 때는 선거 두 달을 앞두고 이 후보 측이 김대중 후보가 비자금 670억원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은 대선 전에 수사를 끝내기 어렵다는 이유로 수사 유보를 발표하면서 의혹 제기가 선거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2007년 대선 때는 이명박 후보를 둘러싼 BBK 주가 조작이 선거판을 흔들었다. 하지만 이 후보의 ‘경제 대통령’ 이미지를 넘지 못했다. 2012년 대선 때는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으로 대선판을 달궜다.

내년 3월 9일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5개월 앞두고 두 사건이 대선판을 뒤흔들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성남시장 시절 추진한 대장동 개발 의혹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둘러싼 ‘고발 사주’ 사건이다. 대선 지지율 1, 2위를 다투는 여야 유력 대선 주자가 동시에 대형 사건에 휘말린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대장동 게이트’는 성남시 판교 옆 대장동을 주택단지로 개발을 하면서 벌어진 일로 복잡하기 짝이 없다. 의혹의 핵심은 민간 업자가 소수 지분으로 참여해 엄청난 배당과 개발 이익을 가져가도록 한 설계를 누가 주도해 짰는지, 이 과정에서 의도적인 특혜와 뇌물 제공이 있었는지 여부다.

대장동 개발 사업 목적으로 ‘성남의 뜰’이라는 민·관 합동 특수합작법인(SPC)이 만들어졌다. ‘성남의 뜰’은 자본금 총 50억원에 50%+1주를 출자한 성남도시개발공사가 토지 강제 수용과 인허가 등을 해주고 민간은 하나은행(14%), KB국민은행(8%), IBK기업은행(8%), 동양생명(8%), 하나자산(5%), 자산관리사인 화천대유(0.9999%)와 관계사인 천하동인 1~7호(6%) 등이 참여하는 구조로 짜여졌다.

문제는 배당금 배분이 적정한지다. 지분 50%를 넘는 성남도시개발공사는 최근 3년간 1830억원의 배당금을 받은데 비해 지분 7%에 못미치는 화천대유와 천하동인에는 4040억원이 돌아갔다. 누가 이런 설계를 주도했는지가 관건이다. 야당에선 이 지사의 측근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선을 넘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성남도시개발공사가 하루 만에 심사를 끝내고 특정 사업자를 선정한 것은 유 전 본부장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장동 설계했다는 이재명 “책임질 일 없다”지만…
대선판에서 가장 큰 관심은 대장동 게이트와 이 지사와의 관련성이다. 이 지사는 “대장동 개발에서 사익을 챙긴 것은 1원도 없다”며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다. 오히려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아들이 퇴직금 등 명목으로 50억원을 받은 것을 두고 ‘국민의힘 게이트’라고 주장하고 있다. ‘위리안치’ ‘마귀’ ‘부패지옥’ ‘장물’ 등 자극적인 단어로 국민의힘 공격에 나섰다.

하지만 이 사건과 관련해 이 지사 주변 인물인 이른바 ‘성남 라인’이 잇달아 구설에 오르고 있다. 당장 대장동 개발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유동규 전 본부장이 11억원대의 뇌물 수수와 배임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10년 넘게 이 지사 곁에 있었다. 성남도시개발공사의 사장 역할을 했고 이 지사가 경기지사에 당선된 뒤 차관급인 경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웬만한 신임이 아니고선 힘든 일이다.

이 때문에 이 지사가 측근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 지사는 그의 구속에 대해 부하 직원 관리 잘못이지 스스로 책임질 일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 지사 스스로 대장동 개발을 직접 설계했다는 점에서 배임이 아니냐는 게 야당의 주장이다. 이 지사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정진상 전 경기도 정책실장과 장형철 경기연구원 경영부원장도 이런저런 구설에 올라 있다.

지금까지는 대장동 게이트가 이 지사의 대선 가도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지지율에 큰 변화가 없고 당내 경선에서도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앞으론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 국민참여 경선은 당 지지자들을 위주로 이뤄졌다. 대장동 게이트는 여당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줬다. 이 지사가 국민의힘을 향해 거친 말을 내뱉은 것도 이런 지지층을 겨냥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거친 입 전략이 대선 본선에서 중도층을 오히려 멀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더욱이 대장동 수사가 어디로 불똥이 튈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낙연 측 “이재명 게이트”…경선 뒤 화합 쉽지않을 듯
특히 이 지사의 경선 경쟁자인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측이 ‘이재명 게이트’라고까지 언급한 것은 심상치 않다. 이 전 대표는 “대장동 의혹이 안 풀리면 화합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1위 후보 측근이 구속된 상태로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 정권 재창출의 위기”라고 했다.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며 “국민들이 납득하고 수긍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민주당이나 대한민국에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도 했다. 설훈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은 “국민 49.7%가 대장동 사태를 ‘이재명 게이트’로 인식하고 있다. (이 지사가)구속되는 상황을 가상할 수 있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대장동 게이트를 다루라”고 촉구해 파장이 일었다.

신경민 캠프 상임부위원장은 “이번 대선은 결국 ‘대장동 대선’이 될 것”이라고 했다. 파장이 클 것이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경선 뒤 화합은커녕 대장동 게이트 수사 향방에 따라 경선 불복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소리가 나온다.


고발 사주 수사 대상이 된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마찬가지다. 윤 전 총장이 총장 시절 고발 사주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손준성 검사나 다른 검사의 관여 사실이 드러난다면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윤 전 총장이 이 지사처럼 관리자로서의 도의적 책임을 주장하더라도 여당은 정치적 공세를 총력적으로 펼칠 게 뻔하다.

여야 모두 지지율 1위 후보가 피고발인이 되면서 수사 대상이 되는 전례없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검찰과 경찰 손에 이들의 운명이 달린 것은 초유의 일이다. 벌써부터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최악의 대선전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 수사가 끝날 때까지 깜깜이·안갯속 대선판이 될 수밖에 없고 그만큼 공정하고 투명한 수사가 중요해졌다. 수사를 미적대다가 ‘제2의 병풍’ 같은 일이 되풀이된다면 대선 불복 사태를 초래하지 말란 법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검찰과 경찰의 수사 행보를 보면 미덥지 못하다. 초동 수사에 실패해 휴대전화가 사라지는 등 증거 인멸 시간만 벌어줬다는 비판이 많다. 특별검사를 통한 진실 규명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홍영식 논설위원 겸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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